꽃무릇이 만개한 군락이 바람결에 흔들릴 때 마다 붉은 파도가 남실대는 것 같았다.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지면 꼭 시뻘건 바다 한 가운데 표류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쩐지 어지러워져 나도 모르게 아, 하고 멍청한 소리나 뱉으며 휘청이대서도 난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석산에는 전설이 있는데…….’ 내가 지척에 서있는데도 너는 처음부터 홀로 서있었던 사람처럼 말했다. ‘지옥 같다.’ 버석하게 마른 목소리가 귓가에 달라붙어 쩌적하고 갈라졌다. 간만에 척 좀 하려니까. 너는 한번 더 말했다. ‘지옥 같다, 정말.’ 괜히 억울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리자, 눈에 보이는 내리깐 속눈썹에 가슴이 찌르르 울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두 부질없다는 듯 발끝으로 꽃봉오리를 툭툭 건드리는 네 모습에 나는 석산을 지옥꽃으로도 부른다는 사실을 상기해냈고, 네가 등을 돌려 내게서 멀어지는 그 순간 이럴수가,
나는 전설 속 이야기같은 지옥도에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