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로서, 그딴 말을 가슴에 품고 사는 다이무스 홀든의 죽음은 다를 줄 알았다. 홀든의 검사라는 긍지에 비하면 죽음의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을 것 같았다. 설사 그의 얼굴에 피먼지가 엉겨 붙어 있더라도, 그의 주위에 패배의 잔해가 너저분하게 쓰러져 있다 하여도, 그 모든 것이 그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주변에 흩어져 있어 거룩해보이지는 않을까 했다, 마치 깨끗하게 닦인 모습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무수한 꽃들이 단정하게 드리워진 안락한 관에 누워있는 것처럼. 햇살이 감은 그의 두 눈 위로 성스러이 드리워져 아무도 보지 못할, 그래, 유치한 이름으로 천사라 불리는 것들이 그의 영혼을 저 하늘 너머 안식의 세계로 그를 인도하겠지. 그래서 숨이 멎은 그의 눈꺼풀에, 코끝에, 입술에 기꺼이 입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일 것 같았다, 아니 그는 반드시 그랬어야만 했다. 제멋대로 만들어낸 환상에 꼭 씻을 수 없는 배신을 당한 것처럼 이글은 치를 떨었다. 결국 입을 틀어막고 코를 쥐어 막아도 참을 수 없는 토기에 결국 이글은 뒤를 돌아 허리를 훽 꺾고는 속을 게워냈다. 그는 눈을 감지조차 못했다. 다가가 손을 뻗어 저 두 눈이라도 편히 감겨주어야 할 텐데 차마 그럴 각오, 다짐, 용기 따위의, 피식자에게나 어울리는 나약한 단어가 마음에 서지 않았다.
검사로서, 검사의, 검사, 단어는 부질없다. 말 대신 늘 행동으로 증명하곤 했었던 다이무스 홀든은 죽어서도 그 신념을 바꿀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전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모든 죽음은 개죽음일 뿐이라고 다이무스 홀든이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이글 홀든이 그를 발견한 때가 좋았다, 아니 그것을 좋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서둘러 달려오지 않았더라면 남은 한쪽 눈알마저도 파먹어 버렸을 테지. 숨이 멎은 다이무스 홀든은 그렇게 무기력했다. 그는 조금씩 썩어가고 있었다, 아니 모든 송장의 부패에 조금씩이라는 말은 무색하다. 그는 모든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순리대로 이런 순간에서마저 매우 착실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날벌레가 들끓고, 조금씩 구더기가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이 난리통에, 그나마 그에게 양호하다는 말은 써 붙일 수 있을 성 싶었다. 허기진 들짐승 날짐승 따위들의 좋은 먹잇감인데도 불구하고 뜯어진 곳은 눈알 한쪽과, 허벅지의 살점 한 웅큼 그리고 그가 그리 중히 여겼던 오른 팔 하나 뿐이었다. 그러면 무얼 하나, 썩은 악취가 진동하여 섣불리 곁에 다가설 수 없었다.
억지로 게워낸 속에 목구멍이 시큼하여 이글은 목을 움켜쥐었다. 숨을 토해내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서 억지를 부리듯 토악질 같은 기침을 했다. 무언가 축축하다 싶더니 시야가 어른어른했다. 빌어먹을, 제기랄, 씨발! 목구멍이 여간 따가운 것이 아니라 눈물이 비쳤다. 이글은 풀썩, 무너져 내리는 모양새로 무릎을 접어 앉았다. 그대로 고개를 수그려 두 팔로 제 머리를 끌어안았다. 속을 게워내자 그 속을 채우려는듯 따라오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비참한 기분이었다.
사랑했던 사람은 어디에 있나.
다이무스 홀든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그 잘나셨던 다이무스 홀든 조차도 죽음 앞에서는 한낱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이글은 질색하듯 고개를 도리질치며 치러지지도 않은 그의 장례식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덧그려보았다. 사랑해, 고이 잠든 당신에게 가벼이 입 맞추고 귓가에 나직이 속삭일 참이었다, 나도 곧 따라갈게, 형처럼 아름다운 마지막일 수는 없겠지만. 다이무스 홀든의 시신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이글은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미련 없는 삶에 그나마 너로 억지로 살았으니, 당신이 죽으면 기꺼이 당신을 따라가겠다는 다짐따윈 까마득히 잊은 채, 그의 곁에서 멀찍이 떨어져 속을 뒤집는 토기와, 몸을 기어오르는 한기와, 혈관에 열꽃처럼 흐드러지는 배신감과, 심해의 수압처럼 저를 억누르는 자괴감에 더욱 깊이 몸을 옹송그리다, 마침내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어린 날의 모습처럼 제 모든 것을 놓아,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꺽꺽대며 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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