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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phers/short

[드렉다무]


“잠깐 손 좀 줘봐.”


다이무스가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드렉슬러는 다이무스의 손목을 낚아챘다. 예고는 했지만 몸이 예상하지 못한 탓에 몸이 얼결에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렸다. 집무실의 책상 위를 두 팔이 가로질렀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런 무례함에 목소리가 곱지는 않았다. “뭐하는 건가.” 다이무스가 물었지만 드렉슬러는 붙잡은 다이무스의 손목을 돌려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야 드렉슬러는 꼭 대답이라도 하듯 손가락으로 그 위에 무엇인가 적기 시작했다. 꼭꼭 눌러새겨서, 하지만 흐르는 그림을 그리듯이. 손바닥 위를 희롱하듯 간질이는 감각에 다이무스는 의외로 쉽게 살피고 있던 서류의 존재를 잊었다. 새겨진 글씨가 혈관을 타고 흘러 의식 속에 각인된다. 다이무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것이었다.


즐거운 스페인어 시간.」


마지막으로 콕, 찔러 마침표까지 끝낸 드렉슬러는 저도 우스운지 살짝 고개를 숙여 푸스스 웃었다. 뭐 그리 중요한 것이라고 바짝 집중한 것이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퍽이나 한심스럽기도 하여 다이무스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곱지 못한 눈빛에 다소 김이 샌 느낌이 서려있었다. “즐거운 것은 너 뿐인 것 같군.” 남은 서류를 마저 검토하기 위해 손목을 슬쩍 비틀어 빼려고 하였더니, 아아 잠깐잠깐, 드렉슬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다시금 꼭 잡고 아쉬운 소리를 내며 제게로 당겼다. 


“그건 영어였고, 스페인어 시간이라니까. 오늘 내가 가르쳐 줄 문장은 말이야…….” 


한 번도 그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달라 이른 적도 없었고, 그가 다이무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준 것도 없었지만 드렉슬러는 언제나 그랬던 자연스런 일과 중 하나인 것처럼 다시 손바닥 위로 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늘상 그렇듯 별 실없는 것이겠지, 신경을 끄고 서류를 살펴도, 신경은 어느새에 덧그리는 글씨를 읽고 있다. 스페인어를 가르쳐준다는 드렉슬러는 쓴 글씨가 무슨 발음인지 읽어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쓰고 있는 단어의 뜻을 말해주지도 않았다. 가르치는데엔 소질이 없군, 덕분에 그저 다이무스가 알고 있는 약간의 지식으로,「우리는…」, 더듬더듬 읽고 있을 뿐이었다. 「서로…」신경 쓰지 않는 척 하면서도 어느덧 시선은 손바닥을 향해있고, 입술은 소리 없이 발음을 흉내 냈다. 


천천히 획을 긋는 사이사이 그런 다이무스를 흘긋 훔쳐보던 드렉슬러의 얼굴에 기분 좋은 웃음이 피었다.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발음하던 다이무스는 어느 순간부터는 알지 못하는 단어들이었는지, 더 이상 입술을 달싹이지 않았다. 다이무스가 더이상 알지 못한다는 것이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드렉슬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조금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숨을 뱉듯 말을 하자 부푼 가슴이 천천히 내려갔다. 


“무슨 뜻이냐면 말이야…….”


마지막 한 획을 긋고, 다시 마침표까지. 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드렉슬러는 손가락도 떼지 않았고, 손목을 붙잡은 손도 놓아주지 않았다. 손바닥을 내려다보느라 숙였던 고개를 드니, 다이무스의 고개가 따라오듯 들어졌다. 하하, 하고 소리 내어 가볍게 웃자 민망한 듯 찡그러드는 미간까지, “넌 참 묘한데서 귀여워.” 드렉슬러는 다이무스 손바닥 위에 낙서라도 하듯 손가락으로 의미 없이 뭉개듯 간질이고선 글씨가 새어나가지 못하게라도 하려는 것처럼 미끄러지듯 손바닥을 겹쳤다. 악수라도 하듯이 손을 꼭 마주잡아 반대편 손으로 책상 위를 단단히 짚었다. 허리를 느른하게 수그리자 책상 위를 가로질러 얼굴이 가까워졌고, 갑자기 다가온 드렉슬러의 얼굴에 다이무스가 짐짓 허리를 뒤로 빼자 그렇게 둘 수 없다는 듯 붙잡은 손을 저에게로 당겼다. 


“이쯤 되면 타이밍도 알 텐데 왜이러실까.”


 입술은 손바닥 위에 스민 글씨가 무슨 뜻이지 알려주지 않은 채 그저 다가와 가만히 맞물렸다. 일종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던지 다이무스는 그를 피하지 않은 채 다소 찌푸린 눈빛으로 능청스럽고 지나치게 평온한 얼굴의 드렉슬러의 감은 눈을 빤히 보았으나, 이내 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온기 속의 호흡을 삼켜냈다. 우리는 서로


 「길들이고 있는 거야.」










그냥 생각나서 슥삭슥삭 드다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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