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도려내는 것 같은 바람이었다. 고막을 찢어낼 것 같은 성난 바람에도, 아니 정말로 고막을 찢어낸 듯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늘어진 몸뚱아리는 싸늘했다. 빅터는 어쩌면 만들어진 순간부터 이 차가운 체온을 가졌을 그것을 부둥켜안고, 그의 머리를 품에 당겨 귓가에 바짝 가져다 대었다. 형상은 미동이 없었다, 기약이 없는 아주 길고 긴 기도의 시간이었다. 시간은 아주 오래 전 부터 고장이 나있었다. 초침으로 삼을 심장 박동이 없는 탓이다. 다만 귓가에 닿는 섬약한 숨결만이 아주 느리게, 끊어질 듯 위태롭게 빅터를 초조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제발, 제발……아. 작은 탄성과 함께 빅터는 감았던 눈을 곧이 떴다. 드디어 그것의 숨이 끊어진 까닭이다. 빅터는 서둘러 괴물을 품에서 떼어내곤 그의 머리를 얼음바닥에 뉘였다. 겨우 하나 걸친 코트를 풀어헤치고선 눈을 움켜쥐어 먼지가 엉겨 얼어붙은 괴물의 목덜미를 북북 닦아냈다.
제 피가 어지럽게 엉겨 붙은 단도를 부산스레 쥔 손끝으로 괴물의 목에 자리한 흉자리를 더듬었다. 철제 봉합사로 이어붙인 자리가 보기 흉하게도 울퉁불퉁했다. 앙리의 머리를 다시 떼어가려면 이 봉합부터 끊어내야 했다. 빅터는 반대편 손끝으로 그것의 목 아래를 꾹 눌러 받쳤다. 곧 칼끝을 툭 불거져 나온 살 위로 가져다 댔다. 투박하게 이어붙인 철사 위로 자라다 만 것 같은 살이 얼기설기 그러나 삶에 대한 미련과 집착처럼 진득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 보잘 것 없는 흉 만큼은 처음부터 제 것이었다고 이르듯, 그리고 빅터는 쓸데없는 미련은 버리라는 듯 겨눈 칼끝을 망설임 없이 눌렀다. 푹, 그리고 썰어내듯 날을 뉘운다. 칼날이 살을 파고들어도 그것은 신음도 미동도 없다. 다만 실을 끊으려 슬근슬근 칼질하는 손길에 따라 꺼덕꺼덕, 머리를 흔들고 있을 뿐이다.
킥, 키긱. 철제 봉합사가 칼날과 맞물려 기묘한 소리를 냈다. 얼어붙은 손끝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자 빅터는 어금니를 악물어 칼을 쥔 손에 바짝 힘을 주었다. 타인이었던 덩어리들이 존재를 갈구하듯 지독하게도 붙어 있었다. 손끝이 허옇게 셀 정도로 세게 말아 쥐자, 힘 조절이 잘못 되었는지 칼이 순식간에 목을 깊이 찔렀다. 갑작스레 깊이 쑤셔들어가는 감각에 빅터는 불에 덴 듯 칼을 쥔 손을 떼어냈다. 눈을 쥐었던 탓인지 땀이라도 난 것 처럼 손바닥이 축축해 있었다. 제길. 자신을 책망하듯 쓴소리를 삼키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기계는 고치면 된다, 그때까지 이 머리를 버티게 할 방법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가져만 가면 된다, 이 머리를, 가져만 간다면 다시 살릴 수 있다, 앙리 뒤프레를, 이번에야말로, 젠장! 생각보다 잘 되지 않자 빅터는 쫓기듯 소리를 내질렀다. 툭, 빅터는 이제 겨우 한 땀을 끊어냈다.
앙리. 네가 잠들었던 그 날에,
창 너머로 들어오는 푸르스름한 빛에 실루엣만 어스름이 가늠할 수 있었던 그 시간에, 앙리 뒤프레는 서재의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빅터는 피곤에 마른 눈가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고는 책상 옆에 오도카니 서있는 스탠드 헹거로 걸어갔다. 부러 그리한 것도 아닌데, 발소리가 죽어있었다. 마치, 유령처럼. 걸려있던 코트를 꺼내들어 앙리의 가슴팍 위 책을 포갠 손 위로 덮었다. 그대로 그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아 턱을 괴었다. 미간이 살짝 찌푸러져 있었다. 악몽이라도 꾸는가보군. 제 다급함에 함께 쫓기고 무리하게 쫓아온 탓인지 몰랐던 새에 뺨의 살이 많이 내렸다. 그것은 응당 네가 감내해야 할 고단함이며. 어둠이 슬그머니 눈에 익자 앙리 뒤프레를 그리는 선이 또렷해졌다. 이마에서 시작해, 반듯한 코를 지나, 입술을 타고 흘러, 으음, 그가 몸을 뒤척이자 무방비한 목덜미가 드러났다. 빅터는 작게 코웃음 쳤다. 무심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어쩌면 정말 그리 해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아직 벌건 손자국이 남아있는 것 같다. 빅터가 고스란히 손을 댄 자리다. 검지를 펴 목울대에 툭, 조심스레 가져다댔다. 겁도 없군. 이봐, 앙리. 입술은 닫혀있다.
충동적이었다. 실험에 또 실패하자 급박함을 이기지 못하고 집기들을 부수어 던지는 빅터를 타이르자, 그런 세월 좋은 말 할 시간에 네 목이라도 내놓으라며 목을 졸린 지가 바로 며칠 전이다. 목젖을 짚었던 손가락을 유려하게 아래로 그어 내렸다.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아동바동 대다, 새어가는 목소리로 ‘빅…터….’ 겨우 뱉은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바짝 움켜쥔 손을 놓자 바닥에 주저앉아 제 목을 부여잡고 숨을 게워내듯 켈록대는 앙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대신 ‘혼자 있고 싶군.’ 겨우 그 한마디 던지고선 도망쳤다. 앙리의 목을 가로질러 내려온 손가락 끝이 소파에 닿자, 빅터는 앙리의 목덜미를 노크하듯 두드렸다. 톡톡. 네 목을 내놓으라는 내 말이, 마음에 없는 말이 아니라면. 그어 내렸던 자리를 다시 기어 올라가듯 매끄럽게 그어올렸다. 그리고 숨을 덮듯 손으로 목을 덮었다. 호흡이 고르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맥박이 규칙적이다. 따스하고 안온하다. 그가 절대 익숙해지지 말아야 할 타성에 기대어 빅터는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허나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취했던 것처럼 무어라 속살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뻔 한 말이었을 게다. 아니, 그건 언어였을까. 그저 조용히 엄지를 문질렀다. 빅터는 앙리의 맥박을 초침삼아, 새벽달이 지는 오랜 시간동안 그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밤이었다. 앙리. 앙리,
아마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네 숨이 뛰던 그 자리에 입을 맞추고 싶었던 모양이다.
퉤, 마지막 살점을 뱉어냈다. 붉은 무언가가 발치에 축축하게 스몄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손등으로 입가를 훔쳐내자 입가에 핏자국이 이지러졌다. 씨근덕거리는 숨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누운 괴물을 내려다보았다. 목을 이어붙인 봉합사는 다 끊어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더 질긴 연으로 붙어 있을 생각인지 도저히 쉬이 끊어지지가 않아 이를 세워 뜯어내었다. 그 동안에 그것에게서는 어떤 호흡도 맥박도 없었다. 하아. 호흡하는 것은 오로지 그 뿐이었다. 하아. 쏟아진 머리를 쓸어 넘기려 손을 들었을 때에, 문득 손에 너저분하게 번들대는 핏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손 아래로 목이 뜯겨 너절한 괴물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눈꺼풀은 닫혀있었지만 시선이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너도 나를 향해 총이라도 쏠 것인가? 언어가 되지 못한 조소는 서리가 되어 내려앉았으므로, 당연히 돌아오는 음성도 또한 없었다. 다만 뇌리에 박혀있던 총성이 터졌다. 시선을 피하기라도 하듯 발로 밀어 그것을 까 뒤집었다. 시야가 어룽졌다.
매우 당연한 소리로 그의 머리를 단숨에 끊어낼 단두대를 가져오지 못했으므로, 빅터는 곡괭이를 잡아들었다. 봉합을 튿낸다 하여 떨어질 머리가 아니었다. 앙리 뒤프레의 머리를 들고 가야했다. 머리를 잘라야 한다. 그래, 이미 이로 너저분하게 뜯어낸 탓이 깨끗하게 데려갈 수는 없겠다만 잘 조준하여 세 번만 안에 끝낸다면 다시 쓸 수 정도는 될 것이다. 자칫 망설여 잘못 내려치는 순간 비껴나가 뇌를 찍어버린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으니 정신 차려야 한다. 그것의 뒷머리를 겨누어 두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어쩌면 단 한 번에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가 차갑다. 전에 없을 침착함이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물색없는 팔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정신 차려, 빅터 프랑켄슈타인. 죽이는 게 아냐, 다시 가져가는 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저 괴물과 다름없는 꼴로 그의 숨통을 뜯어내기까지 않았던가. 단 한 번, 모두가 앙리 뒤프레에게 살인자라 손가락질 하던 그 날의 단두대처럼 망설임 없이 단 한 번만 내려찍으면 될 일이다. 그러면 될!
그날 잠결에 흐릿하게 너는 눈을 떴고, 나는
그게 될 리가 없잖은가.
뎅그렁, 추락하는 소리 뒤로 빅터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아. 하아아. 몸을 웅크려 머리를 잡아 뜯듯 쥐었다. 숨을 잃은 사람처럼 불안한 호흡을 뱉었다. 앙리.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무어라도 붙잡을 것이 필요하여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손에 잡힐 것이라곤 그것의 사체 뿐이다. 녹아내릴 듯 뜨거운 눈가를 엉망으로 문지르고선, 걷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그것의 사체로 기어갔다. 기어간 자리 아래로 벌건 핏물이 길게 미련을 그렸다. 아니야, 미안해 앙리, 내가 잘못했어, 이러려던게 아냐 앙리, 나는, 앙리……. 엎어진 그것의 사체를 낚아채듯 잡아 당겨 바로 뉘었다. 새빨갛게 언 손끝으로 바닥의 눈을 긁어, 이제 더 이상 옛 흔적을 찾기도 힘들만큼 낭자하게 뜯겨진 목 위로 덮었다. 빅터는 그 위로 입술을 내려보려다, 그저 짓씹었다. 손톱이 뒤집히는 줄도 모르고 정신 나간사람처럼 바쁘게, 제발 다시 새 살이 되어 붙으라는 것처럼 바닥의 눈을 긁어모아 그의 목덜미를 덮고, 앙리, 눌러 붙이고, 앙리, 반대편의 눈을 다시 그러모아, 앙리, 다시 눌러 붙이고, 앙리, 그의 맥박이 뛰던 자리에 올라탄 눈이 벌겋게 물들어서, 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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