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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enstein

[빅크리자크] XXX 1



0.

 

신은 그가 어미의 뱃속에 잉태한 순간부터 네 삶은 이리 끝날 삶이라고 정해놓기라도 한 듯이


그것의 위로 올라타 총신에 손을 뻗었다. 성마른 손가락에 방아쇠가 걸리자 쓰러지듯 고개를 고꾸라뜨렸다. 얼지도 못한 눈물 한 방울이 탄환이 박힌 그것의 가슴 위로 툭 떨어졌다. 실탄이 아직 남아 있었다. 다행일 것이 없어 그딴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무엇인가 발음하려 입술을 달싹였으나 그곳에는 그가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되지 못한 것이 허연 서리로 가라앉자 빅터는 손을 뻗어 그것의 목 위로 가져다 올렸다. 이내 다른 한 손으로 제 머리 위로 총구를 겨누었다. 파르라니 떨리는 눈꺼풀을 닫았다. 내린 어둠 위로 딱히 과거의 삶이 지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어느 날 처형장의 단두대 칼날이 내리치던 단편이 떠오를 뿐이었다. 왜 하필 그 순간인지 모르겠으나고통도 없을 만큼 찰나이리라.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이었다.

 

빅터는 불에 덴 사람처럼 총을 놓았다. 떨어진 권총이 벌건 핏물 위로 미끄러져, 빙글빙글 돌다, 멈출 때까지 그는 사고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권총의 발버둥이 멈추고 나서야 갑자기 온 신경이 뜨겁게 그의 몸을 내달렸다. 떨리는 숨을 참아 겨우 그것의 목을 잡은 부분에 집중했다. 미세한, 아주, 그 미세한. 아아. 빅터는 신음하듯 흐느꼈다. 분명 손끝에 맥박이 닿았다. 눈동자가 어지럽게 방황하다 그것의 가슴으로 시선이 향했다. 서둘러 코트 앞섶을 해치니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으나 총탄이 박힌 자리에서 울컥 피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심장이 뛰고 있다.

 

빅터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착각인가. 언제부터인지 하늘을 뒤덮고 있던 그 무수한 별빛도, 일렁이던 오로라도 모두 허상이었다는 듯이 까맣게 꺼져있었다. 하늘에 그가 돌아갈 자리는 없었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새까만 어둠 안에 갇힌 그는, 하하……, 유리 조각에 폐를 찔리기라도 한 듯 뾰족한 실소를 흘렸다. 절망에 빠진 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빅터는 한 이름을 읊조렸다. 신이시여. 죽지 않았다 혹은 다시 살아났다. 어느 쪽이듯 실험의 성공이 아닌 신의 또 다른 저주라는 것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알았다.

 

빅터는 그것의 아래로 내려와 그것의 어깨 밑으로 팔을 밀어 넣었다. 이내 둘러멨다. 지탱하려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 찢어질 듯한 고통에 빅터는 악을 내질렀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겨이 내디딜 때마다 벌건 핏물이 길을 그렸다. 몇 걸음 내딛지 못하고 고꾸라지면 다리에 통각이 둔중해질 때까지 그대로 기었다. 이를 악물었다. 너는 이 다리로는 내가 북극을 빠져 나갈 수 없다 했다. 허나 온 생에 거쳐 저주를 등에 이고 살아온 자가 겨우 이깟 다리 하나에 무너지겠는가.

 

 

1.

 

지독한 비명소리였다.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들어있었던 빅터는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은 사람처럼 느릿하게 눈을 떴다. 그런 굉음이니 그렇게라도 그를 깨울 수 있기라도 했던 것인지 이제 막 깨어난 그는 여전히 고요에 짓눌려있는 듯했다. 끔찍한 저 비명소리가 꿈결인 양 아득하게만 들려 다시 눈을 감았다. 일어나야지, 그래. 무릎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었던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선 헝클어진 채 쏟아져 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술에 취한 사람처럼 쉬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휘청거리는 고개를 겨우 바로 들어 쿵, 벽에 뒷머리를 기댔다. 서서히 눈을 떴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날들을 너무 오래 보낸 탓일까, 감각이 현실을 좀체 인지할 수 없었다. 철컹, 철커덩! 철침대가 불규칙한 소리로 굉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요란한 소란이 그의 귓전을 정신없이 때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어둠이 조금씩 눈에 익기 시작했다. 철침대 위에서 어떤 인영이 불에 타들어 가는 사람처럼 펄떡대며 끔찍한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분에 찬 듯, 악에 찬 듯. 철컹, 철커덩! 경련이 격해질수록, 비명이 거대해질수록 철침대도 거세게 흔들렸다. 바닥을 지탱한 침대 다리마저 들썩일 정도로 거셌던 발작은 결국 철침대가 옆으로 넘어지고 나서야 멈췄다. ! 차가운 바닥으로 처박히는 소리가 꼭 뇌성을 닮아있었다. 천둥소리 뒤로 거센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소란스런 고요가 찾아왔다. 색색, 밭은 숨이 공기를 타고 진동했다. . 빅터는 그제야 웃었다.

 

괴물이라 불리던 것은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바둥쳤으나 소용없었다. 그 언젠가처럼 쇠사슬이 침대에 제 몸을 꽁꽁 묶어둔 탓이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보기 위해 머리로 바닥을 짚은 뒤 밀어보았으나 흙먼지만 들이켰다. 도망칠 구석을 찾듯 고개를 퍼뜩 쳐들었다. 저 멀리 시야에 부서진 인형처럼 널브러진 구둣발 하나가 들어왔다. 고개를 좀 더 뒤로 젖히면 저 다리 주인의 낯짝을 볼 수 있을 터지만 보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뜬 순간 낯설지 않은 천장을 보고 든 착각에서 깨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그의 창조주는 그를 굳이 현실로 잡아 끌어냈다.

 

내가 제법 오랜만이겠군.”

 

얼마나 오래 말을 하지 않았는지 잠기다 못해 갈라진 목소리가 말하고 있었다. 네 지난한 나날은 꿈이 아니었고, 너는 실패했노라.

 

……. , , , !”

 

, ! 울분에 찬 괴물은 자신이 다시 살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못 견디게 괴롭다는 듯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철침대가 다시 난잡하게 들썩였으나 그뿐이었다. 있는 힘껏 내다박아도 그는 죽지 못했으며, 심지어 정신을 잃지도 못했다. 그렇게 악과 함께 머리를 처박은 지 수 여 번, 헛구역질을 동반한 메스꺼움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우웩. 허리를 접어 몸을 옹송그렸으나 저 빌어먹을 창조주가 단단히 결박해놓은 탓에 그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처연한 목소리가 그것의 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

 

왜 돌아왔어, 원하는 게 뭐야. ……그랬었지. 그걸 묻고 싶은 건가?”

…….”

내가 어떻게 그 다리로 북극을 빠져나왔는지, 어떤 생각으로 널 데려왔는지, 내가…….”

 

그는 한참을 물에 잠겼다가 겨우 수면 위로 벗어난 사람처럼 숨을 꿀꺽 삼켰다. 목소리가 한기에 시달리는 듯했다.

 

위화감은 그로부터 비롯한다.

 

내가 3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그래, 넌 그따위 것들은 궁금하지 않겠지.”

 

절그럭, 쇠사슬이 다시 울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무어라 지껄이든 그는 당장 이 사슬이 그의 손아귀 같아 분이 치밀었다. 멋대로 만들어지고, 멋대로 버려졌으며, 멋대로 다시 주워졌다복수의 꿈 따위 한낱 관용일 뿐이었으며, 애초에 그것의 삶은 번개가 내려친 그 날부터 창조주의 뜻에 속박되어 있었다는 것처럼, 비록 그것이 저 빌어먹을 창조주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한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직도 저에겐 북극에서의 싸늘한 칼바람이 아직도 피부를 저미는 듯했고, 총성이 마치 조금 전 꾸었던 꿈인 양 귓전에 생생했다. 결국 돌아 다시 여기인 것을 3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진실이든 그를 구슬리는 거짓이든 자명한 것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실험도 괴물의 복수도. 그는 실패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몰라 그저 숨처럼 뱉자 머리를 갖다 박은 탓인지 지독한 이명이 울려 바닥에 머리를 비볐다. 그리고 그는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질문을 낚아챘다.

 

책임을 질까 해. 네 삶을 찾아주지.”

.”

 

하하. 하하하……. 그 형세가 미친 광대처럼 웃고 있는 것인지 죽기 직전의 벌레처럼 발악하는 것인지 하여,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울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태어나, 아니 만들어진 순간부터 누군가를 죽이고, 죽기를 종용받고, 누군가를 죽이기를 종용받고, 또 누군가를 죽이며,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던 그에게 삶이라. 가당키나 한 소린가. 철침대가 바닥을 쓸며 킥, 키익,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다 일순 뚝 끊어졌다.

 

아직도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허상에 젖어있는가.”

새로운 오른손은 어때.”

 

의식한 것이 아니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오른손이 꿈틀댔다. 오른손의 자극을 감각한 괴물은 천천히 손목을 돌려보았다. 마른 잎처럼 생기 없던 손이 두어 번의 원을 그리고 난 뒤에는 새끼손가락부터 하나, 하나 꼽아 접었다. 구태여 그가 말해주지 않았어도 곧 알아챘을 만큼 멀쩡하여 낯설었다. 미련하게도 아주 잠깐 제 의지로 꿈꾼 삶은 있으나 제 의지대로 멀쩡하게 붙어있는 오른손을 바란 적은 없었다. 저 빌어먹을 창조주는 저에게 제 삶을 찾아준다 말하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의 것을 제 몸에 가져다 붙였다, 처음부터 제 몸인 것이 없었던 몸에 또 다른 이의 것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 무어가 이상하냐는 듯이누군가의 비극이 그에겐 한낱 노리개에 불과한 양, 그 언젠가 어떤 미친 여자가 장난감이라고 던져준 누덕한 인형보다 취급이 하찮았다. 창조주여, 당신의 손아귀에서 무력한 나를 다시 삶이란 이름으로 능멸하고 절망으로 처넣는 고상한 놀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가.

 

손목을 잘라내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혀 반응이 없어서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지경인가 싶었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다행이군.”

이깟 사슬에 묶여있다 하여 내가 죽지 못할 것 같나?”

쓸 만한 다리는 아직 구하지 못했어. 기다려주면…….”

날 죽여라.”

고맙겠군.”

죽여.”

내가 널 인간으로 만들어줄게.”

죽여!”

 

괴물은 간청하듯 포효했다. 야망을 위해서라면 제 친우의 머리 하나 아깝지 않았던, 제 손으로 빚은 피조물이 실패라 여겨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이려 했던, 괴물이라 일컬으며 짐승 우리에 가두어 개처럼 밥을 먹이던, 가진 자의 희열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라 투기장으로 떠밀던, 존재하는 것이라곤 추위와 공허밖에 없던 그 냉혹했던 곳을 이상햔인 양 지껄여대다 독기를 물고 모진 발길질을 하던 가여운 그딴 인간 따위, 아주 찰나 그런 인간 따위가 되고 싶다는 덧없는 꿈을 꾼 적이 있으나……. 죽여! 그를 옭아맨 쇠사슬이 정신없이 절그럭댔고, 철침대는 괴물이 만들어진 날의 천둥소리처럼 쉴 새 없이 울다 결국 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차라리 그런 것들이 생에 더 가까웠다. 그 난장 속에서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요동이 없었다. 그저 잠에서 깨어난 자세 그대로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앉아,

 

문득 쳐든 고개에 눈이 마주쳤다. 아니,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내가 널 인간으로 만들어 줄게내가 널 인간으로 만들어 줄게내가 널 인간으로 만들어……내가, 널…….

그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망자의 얼굴이었다.

 

현실에서 사는 것인지, 아니면 그 너머에 갇혀버린 것인지.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고장 난 인형처럼 계속 그 말만을 되풀이했고 괴물은 그 목소리가 진절머리가 나 계속 발버둥질 쳤다. 소리를 지르고, 쉼 없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 소란스런 폐허의 끄트머리에서 빅터는 숨은 쉬고 있으나 마침내 생이 다 한 사람처럼 스르르 눈을 감았다. 교수형을 당한 시체처럼 머리가 아래로 푹 고꾸라졌다. 저를 향해 내리는 기도문이 멈춘 줄도 모르고 한참을 더 발작하던 괴물은 제 뺨 아래로, 차가운 바닥 위로 피가 번지고 나서야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발, 죽여…….

 

 

다시 눈을 떴을 때 역시 철침대 위였다. 다만 쓰러져있었던 철침대는 바르게 세워져 있었고 그를 속박하던 쇠사슬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려있었다. 괴물은 살며 처음으로 눈을 떠본 것처럼 천천히 눈을 떴다. 공간에 빛이라고 부르기도 무색할 만큼 다 꺼져가는 희미한 불빛이 전부였으나 그마저도 눈이 부셔 미간을 찌푸렸다.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침대 밖으로 두 다리를 내리고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등뒤로 고장난 기계가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가 없었다. 일순간 두통이 일어 손목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머리가 터졌던 자리에 무엇인가 처치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각하는 것이 오른손이라는 자각은 없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다 불현듯 허기가 졌다. 괴물은 그것을 변덕이라 부르기로 했다. 곧 두 발을 바닥에 딛고선 이 어두운 성 어딘가에 있을 그의 창조주를 찾아 나섰다. 괴물은 그 행위에 붙일 이름은 알지 못했다.

 

 

2.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그것을 씻기는 일이었다. 벗어. 굳이 명령이 아니어도 그것은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었다. 괴물은 한 박자 느리게 몸을 움직였다. 그렇다고 하여 저와는 달리 셔츠와 바지를 단정히 차려입은 그를 나무라지도 않았다. 벗을 것이라 해보아야 대충 천을 기워 만든 것 같은 허연 속옷뿐이었다. 괴물은 벗은 몸을 내보이는 데에 별다른 망설임이 없었다. 물론 그라고 하여 수치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겠으나 자신을 그 지난한 시간 동안 타의와 자의로 저를 인간 범주 밖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탓이다. 감히 창조주를 향한 복수에 실패한 한낱 하찮은 피조물은 속옷을 벗은 후 뒤돌아 섰고, 네 저지른 과오를 네 눈으로 직시하라 시위라도 하듯 허리를 펴 바로 섰다. 누덕누덕한 나신이 드러나자 빅터는 물을 끼얹었다. 물줄기가 그것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더운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차가운 소낙비를 맞은 마냥 흠칫했다. 그에게는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 온도가 낯설었다


빅터로서는 이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임을, 그리고 그것의 몸은 앙리 뒤프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몇 번이고 되새겨야 했다. 괴물의 몸에는 신체의 부위를 접합한 흉터뿐만이 아니라, 그가 지나온 삶이 어땠는지 말해주기라도 하듯 여기저기 상처가 있었다. 몸을 돌려 세우다 가슴에 저가 새겨놓은 총상에 시선이 닿자 회피하듯 연거푸 물을 끼얹었다. 온통 회피하고 싶은 흔적들 뿐이었다. 더운물로 몇 번이고 씻어내렸으나 손에 닿는 피부가 여전히 싸늘하여 빅터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맨손으로 몸을 닦아내고, 머리를 감기고, 어느새 그의 소매와 셔츠 자락과 바짓단이 흥건하게 젖은 줄도 모르고 쫓기듯 몰두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온도였다.


몸을 닦고 난 다음에는 당연한 차례로 옷을 입혔다. 괴물은 셔츠와 바지를 받아들고는 익숙한 사람처럼 팔과 다리를 꿰었다. 잘 다려져 살갗에 바스락대는 감촉이 간지러웠다. 괴물은 한쪽 팔을 안으로 접어들고는 팔오금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냄새들이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피비린내, 곰팡내, 부패하기 시작한 사채의 냄새, 쉬어 빠진 음식의 냄새, 하수도에서 피어오르는 썩은 내, 제 곁에서 숨을 다 한 어느 짐승의 비린내. 기분이 좋았던 냄새가 있기는 했다. 아무도 저를 찾지 못하는 어느 숲속 이슬을 머금음 풀내음, 소낙비가 지나간 자리에 부유하는 밤안개 냄새, 새들의 지저귐처럼 얕은 시냇물이 흐르는 냄새 따위들. 이런 따스한 냄새는 처음이라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 지 물어보려다 입을 닫았다. 달리 붙일 형용사를 찾지 못한 괴물은 그 냄새를 처음 입은 셔츠의 냄새라고 부르기로 했다. 처음 입었던 코트의 것과는 많이 다른 냄새였다.


빅터가 목소리가 감상을 비집고 들어왔다. 

 

“식사는 간단히 준비하지.”

 

굶주린 채 우리의 구석에서 옹송그리고 있으면 저 멀리 복도 끝에서부터 방정맞은 구두 굽 소리가 울렸다. ,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괴물은 저를 향한 철창살로 고개를 돌렸다. 그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릇 하나가 우리 안으로 밀어 넣어졌다. 씻은 지 오래된 것 같은 그릇에는 잔반 찌꺼기들을 아무렇게나 섞어놓은 것 같은, 쓰레기 죽 같은 것이 담겨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면 고기 한 두 점이 있기도 했다. 그것이 괴물의 식사였다. 배가 주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할 때나 겨우 찾아오는 그 음식물 쓰레기마저 그때의 괴물에게는 간절한 것이었다. 살고자 하는 본능만이 남아 서둘러 달려가 스푼도 뭣도 없이 맨손으로 허겁지겁 퍼먹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간악한 손길이 제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기도 했다. 오구오구, 배가 많이 고팠어어~. 그는 괴물이 겪은 인간들 중 가장 그를 짐승취급 했다.

 

괴물은 서둘러 움직였으나 진척이 없었다. 오른손은 멀쩡하게 붙어있었으나 숙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괴물은 셔츠의 단추를 잠그기 어려운 듯했다. 이제 겨우 다섯 살 된 것 같은 서툰 손놀림에 결국 저기 멀리 앉아있던 빅터가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괴물의 앞으로 다가왔다. 제법 다정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셔츠자락을 아래로 당기고는 아래에서부터 하나 둘 씩 차근차근 채워 올라가는 손가락을 멀뚱히 내려다보며 괴물은 물었다. ‘귀여운, 괴물새끼.’

 

날 뭐라고 부를 건가.”

이름이 갖고 싶은 건가?”

 

. 빅터가 낮게 조소하고선 단추를 잠그던 손으로 향해있던 시선을 비스듬히 올렸다. 손이 어느덧 가슴팍을 지나고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괴물이라는 이름을 인간에게도 쓴다면, 사양하지.”

 

망설임 없이 단추를 채워나가던 손이 목둘레에서 망설이듯 멈추었다. 도망치듯 시선을 회피한 것은 그것이 아닌 빅터였다. 목의 단추를 마저 채우고 크라바트까지 매어 목의 저 흉터를 가려낼 심산이었으나, 이름이라,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애꿎은 단추만 붙잡은 채 한참을 놓지 못했다. 다시 조우했을 때처럼 꺼멓게 죽은 목소리가 기어가듯 대답하며 손을 다시 움직였다.

 

앙리.”

 

음성과 동시에 괴물은 목의 단추를 마저 채워낸 빅터의 손을 쳐냈다.

 

싫어.”

앙리 뒤프레.”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괴물은 빅터의 어깨를 밀치며 일갈했고, 빅터는 그대로 당해줄 심산이었던 것처럼 고꾸라졌다. 또. 또 머리가 아팠다. 이따금씩 머릿속이 저 끝에서부터 새하얗게 타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빛을 한 데 모은듯 좁고 뜨겁게 타오르던 감각이 어느 순간 제 몸뚱아리를 다 집어삼킬 듯 빠르게 번지면 괴물은 혼이 나간 듯 우리의 철창을 잡아 흔들고 소리를 질렀고, 소란은 온갖 몽둥이로 정신을 잃을 만큼 후드려 맞고서야 끝이 났다. 매번 느끼면서도 그것이 어떠한 느낌인지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하지만 북극 하늘의 오로라와 쏟아지는 별빛을 맞은 그는 이제는 알고 있다. 그 감각은 죽음과 닮아있다. 몸과 머리를 이은 이 봉합사를 끊어 머리를 잡아 뜯고 싶은 기분이 들어 애써 말린 머리를 움켜쥐고선 분을 짓씹으며 말했다.

 

네가 말한 내 삶이라는 게 고작 앙리 뒤프레의 삶인가?”

이젠…….”

“앙리, 앙리, 빌어먹을 앙리 뒤프레! 난 내 삶에 대해 물었어.

……기억나는 이름이 그것뿐이야.”


그는 작게 도리질 쳤다.


“하하. 정말로 기억나는 게 그것뿐이군.”

……하.”

충분한 대답이 됐나?”

 

자조적인 목소리로 대답한 빅터는 무심하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괴물의 앞에 섰다. 다리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며 그는 작게 뒤뚱거렸으나 당장 두통에 시달리는 괴물은 눈치채지 못했다. 빅터는 숨을 고르듯 퍽퍽한 한숨을 내쉬었으나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기라도 한 듯 뺨에 닿는 숨결이 없었다. 오른팔에 걸쳐두었던 크라바트를 괴물의 목덜미에 둘러 리본을 매려 하였지만 괴물이 서둘러 낚아채 바닥에 내팽개쳤다.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던 시선이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별 대수롭지 않게 허리를 숙여 다시 주우려던 찰나 손등으로 단추 하나가 툭 떨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니 조금 전 목을 단정히 채웠던 자리가 구겨진 채로 벌어져 있었다. 목의 상흔이 훤히 드러났다. 그는 결단코 단추를 채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숨을 쉬기 어려운 듯 호흡이 가빴다. 더는 기억나는 이름이 없다는 빅터 대신 몇 개의 얼굴을 기억해낸 괴물이 씨근덕거리며 괴물이 말했다.

 

낡아 빠진 신앙이군. 괴물인 편이 낫겠어.”

 

 

 

이 빌어먹을 괴물새끼야.”

 

자크를 조우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빅앙 기반 빅크리쟈크

제목은 걍 세명이 나오니까 XXX .. 정말 제목짓기 어려웁다!

셋이 사는 이야기 일단 배경 깔아둠

그때그때 보고싶은 것을 조각조각 이어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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