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rankenstein

[빅크리자크] XXX 5



13.

 

무방비했던 괴물은 자크가 내리꽂은 주먹에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자크는 쉽게 가시지 않는 흥분을 숨으로 씨근덕거리며 바르작거리는 괴물을 내려 보았다. 팔을 딛고 겨우 상체를 일으킨 괴물이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수그러뜨리고선 뺨을 쓸었다. 자크의 눈썹이 찌푸러들었다. 그제야 3년 전과 달라진 변화 하나가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괴물의 오른 손바닥이 제 입가를 훔치자 엉성하게 터진 입술의 피가 아무렇게나 번졌다. 괴물의 오른손은 더 이상 3년 전처럼 얼기설기 붙어있지 않았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 소리에 겨우 자크가 제 앞에 있다는 것을 자각한 것처럼 괴물이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 올리자 눈이 마주쳤고 자크는 이내 부아가 치밀었다. 어디라도 분풀이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발길질을 하려고 발을 들어 올렸는데, 기분이 누그러드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발로 걷어차기도 전에 괴물이 퍼뜩 팔을 들어올려 머리를 감싸고 몸을 바짝 웅크렸다. 꼭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자크가 그 꼴을 보고 슬그머니 발을 내려놓아도 쉽사리 몸을 풀 생각을 않았다. 폭력의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 꼴을 보니 화가 진정되다 못해 기분이 좋아지려고까지 했다. 그래, 자크의 기억과 시간이 괴물의 몸에 그렇게 각인되어 있었다, 바로 이거지.

 

자크는 괴물의 머리맡으로 가 주저앉듯 쪼그려앉았다. 여즉 몸을 말고 있는 괴물의 팔을 하나 하나 떼어 벌리자 미동이 없는 머리통이 나타났다. 턱 아래로 두 손을 밀어 넣어 받친 고개를 들어 올리자 생기 없는 눈동자가 자크를 올려다보았다. 자크는 한 손으로 괴물의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는 뺨을 툭툭 두드렸다. 눈꺼풀이 느리게 꿈뻑였다. 이른 새벽을 머금은 이슬의 냄새가 투기장의 습기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꼭 그때로 돌아온 기분이지 않는가. 자크는 괴물을 어르며 조용히 읊조렸다.

 

개새끼.”

 

괴물이 졸랐던 목덜미가 뻐근했다.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다.

 

자크의 잠을 깨운 것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앓는 괴물의 소리였다. 비에 쫄딱 젖은 개새끼마냥 끙끙 앓던 소리가 어느 새 짐승이 숨을 끓는 소리처럼 변해있었다. 그 부산스러움에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밖으로 고개를 빠끔 내밀었더니 괴물은 몸을 웅크린 채 이따금 늑골을 부슬 기세로 제 가슴을 내려치고 있었다. 그 꼴에 자크의 머릿속에 온갖 하찮은 것들에게 찾아온 죽음의 순간들을 떠올랐다. 가령 키우던 개가 들개에게 목을 몰려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던 때라던가, 이름 모를 벌레가 배를 까뒤집고 펼치지도 못하는 날개를 퍼덕이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던 모습이라던가, 까뜨린느가 살려달라며 고개를 연신 조아리며 두 손을 싹싹 빌었던 순간이라던가, 그날 시뻘건 불길 위로 숨을 뱉던 시꺼먼 연기와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명소리 같은 것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었던 뒷모습과 목소리 하나. 기분이 나빠져 자크는 발끝으로 바르작거리는 괴물을 툭툭 찌르며 말했다.

 

. 실성했어? 취하려면 곱게 취해, 사람 잠도 못 자게.’

 

그 목소리에 숨이 넘어갈 듯 억억대던 괴물이 퍼뜩 뒤를 돌아보았다. 안광이 번득였다. 시퍼런 어둠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흰자위에 핏대까지 새운 저 붉은 눈동자가 완전 맛이 갔다는 것을. . 자크는 평생 생존에 기민한 자였다. 잘못 건드렸다는 후회보다 본능이 먼저 경고등을 울려 자크는 서둘러 이불을 걷어냈으나 괴물이 먼저였다. 순식간이었다. ! 콱 막힌 숨을 겨우 토하고 눈을 뜨니 자크는 괴물의 손에 높게 들려 처박혀있었다.

 

, 크윽…………. 제 목을 조르는 괴물의 손을 잡아떼려 안간힘을 썼다. 괴물의 손을 내려치기도 하고, 숨통을 누르는 손가락을 떼어내려 하였으나 제 목과 괴물의 손에 생채기만 낼 뿐이었다.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몸을 비틀어도 긴 다리만 허공에서 허우적댈 뿐이었다. ……. 자크가 눈을 홉떴다. 머리로 피가 쏠려 언제고 터질 것 같았다. 눈가에 젖은 것이 벌써 혈관이 터진 것인지 악 받친 눈물인지 모르겠다. 이를 악물어 언어를 짓씹었다.

 

, ……, 괴물 새, ……끼야, , ……?’

 

곧 죽을 것처럼 나뒹굴며 숨을 헐떡이던 괴물은 그 모든 것이 거짓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멀쩡하게, 다만 흐트러진 숨까지는 달래지 못한 채 낮게 발화했다.

 

니가 왜 살아있어.’

……으라, …….’

에바.’

 

숨이 넘어갈 것 같다. 눈이 까뒤집어질 것 같다. 조금씩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찰나에 괴물이 한 번 더 물었다.

 

그 여자도 살았어?’

 

“아주 좆─같은 새끼.”

 

거기까지 떠올리자 다시 순식간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자크가 패대기치듯 괴물의 얼굴을 밀자 아직 취기가 덜 가신 듯 괴물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대답은 하지 못했다. 이제와 무슨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자크는 입을 달싹였으나, 숨만 다시 삼켰다. 할 수 없었다. 목이 졸려 숨이 깔딱하는 와중에 대답할 여력이나 있었겠는가. 바둥거리는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둔중해지고 늘어지기 시작한 어깨처럼 정신도 느슨해졌을 때에 갑자기 무슨 변덕인지 괴물이 목을 졸랐던 손을 놓았다. 자크는 추락하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크가 어떠한 고통을 채 감각하기도 전에 괴물은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방 밖으로 나섰고, 사라질 듯 멀어져가는 그 뒷모습이 눈에 차고서야 겨우 숨이 트여 연신 켈록대던 자크는 마음만 급했다. 일어나 바로 뒤쫓으려 하였으나 힘이 풀려버린 다리는 몇 번을 고꾸라졌고, ‘씨발!!’결국 분에 차서 성이 떠나가라 악을 지르고 나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고, 이미 점처럼 작아진 괴물을 허겁지겁 쫓았고, 그리하여 죽음들이 잠들어있는 묘지까지 겨우 괴물을 따라잡았고,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자크는 손자국이 벌겋게 남아있는 목 언저리를 매만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묘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지척이었으므로, 허리만 젖히면 눈에 닿는 가장 가까운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괴물은 그런 자크의 등 뒤에서 울다 지쳐 겨우 숨만 색색 고르는 어린 아이처럼 느리게 눈을 끔뻑였고,

 

……룽게?”

 

그 이름에 괴물은 다시 꿈에 스미듯 잠들었다.

 

 


 

14.

단출하다 하여 노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빅터는 이미 식은 식사를 두고 나이프조차 들지 않았던 빅터는 결국 제 앞에 놓인 접시를 밀어내고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 숨을 뱉고 비어있는 자리를 향해 눈을 올려뜬다 하여도 없는 것들이 다시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괴물과 자크 얘기였다. 조금 늦은 조식시간, 둘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차피 식사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원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불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빅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 째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으로 분풀이를 대신했다. 낯부끄러운 성의가 초라하게 뒤섞였다. 빅터는 이제 쓰레기가 되어 버린 것을 멍하니 내려다보다 이내 응접실 밖으로 향했다.

 

실험실 문을 열었으나 괴물은 없었다. 혼자서, 기다리는 것. 그 두 가지는 익숙하였으니 기다릴까 하다가 그대로 문을 닫고 뒤돌아 걸었다. 지겨울 정도로 익숙하였으나 애초에 빅터는 여유로운 성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 성은 넓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동선은 한정적이었고 실험실과 괴물이 지내고 있는 방은 그 동선 중 하나였기 때문에 평소라면 별 번거로운 움직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요건만 마련된다면 굉장히 수고스러운 일이 되고 마는데 벌써 두 가지나 충족이 되어있었다. 하나는 구두와 서면 그 어느 것으로도 합의를 한 적 없지만 바람을 두 번이나 맞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필 그날이 다리가 유난히 말을 듣지 않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진통제를 털어 넣어도 오른 다리의 고통이 가시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날이 그랬다. 눈을 뚠 순간부터 칼이 쑤셔 박힌 자리에 그날 북극의 바람이 들어찬 것처럼. 그런 날에는 이를 악물어 걸어도 눈에 띄게 다리를 절었다. 길고 긴 복도의 벽을 짚어 걸으며 빅터는 이따금 신음했다. 괴물에게 왜 아침 식사 자리에 나오지 않았냐고, 왜 실험실에서 자신을 기다리지 않았냐고 따질 생각은 없었다. 보고 싶다던가 배신감이라던가 하는 감정적인 이유로 그를 향해 가는 것도 아니었다. 빅터 또한 알 수 없으므로 그냥, 이라는 말도 붙이기 어려운 정말 아무런 발걸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유를 붙어야 한다면……. 유령이다. 절뚝, 절뚝. 긴 복도를 울리는 어긋난 발걸음 소리가 빅터의 유령을 따라 걸었다.

 

똑똑똑, 다소 성의 없는 노크를 했으나 허락이 필요하지는 않아 빅터는 바로 문을 열어 젖혔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성그런 공기가 열린 문 사이로 기어 나왔다. 침대 위에는 아무도 없이 구겨진 이불뿐이었다. 등 뒤로 손을 밀자 하나, , 세 걸음 뒤로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빅터는 침대 위에 풀썩 걸터앉았다. 고개를 슬그머니 기울여 아래를 내려다보면 베개도 이불도 없이 청승맞게 바닥에 옹송그려 누운 괴물이 눈에 들어왔다. . 안도 같은 것이 아니라. 빅터는 어느새 거칠어진 호흡을 그렇게 가다듬었다. 그리고 괴물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아무런 말도 미동도 없이. 지난 3년간 매일 그리하였던 것처럼.

 

북극에서 돌아온 이후 빅터가 괴물에게 한 것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괴물의 가슴에 난 상처를 처치하는 것, 그리고 괴물에게 새로운 오른손을 붙인 것. 그 외에 빅터가 달리 한 것이라고는 더운 물을 적신 수건으로 괴물의 몸을 닦아내거나 머리맡에 앉아 언제 눈 뜰지 모르는 괴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었다. 실험실의 싸늘한 공기는 적막을 짓눌렀다. 꼭 숨을 죄는 것처럼. 가끔 그렇게 숨이 답답해 호흡이 조금 버겁다고 느껴질 때면 빅터는 그제야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곤 했다. 닦지 않지 오래되어 먼지가 잔뜩 낀 유리 너머로 희뿌옇게 번져있던 빛이 어느새 사라지고 꺼먼 어둠이 들어차있었다. 노을도 없이 날이 저물었다. 벌써 밤인데도 빅터는 하루를 산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따금 그는 제 손가락을 코 밑으로 가져다 대기도 했다. 연약한 숨이 그의 손끝을 간질였다. 그럼 살아있지 않는 탓인가. 빅터는 철침대에 누운 괴물에게로 가 그의 코끝에도 제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제 것과 별 다를 것 없는 미세한 숨결이 제게 닿았으나 그 숨이 너무 가늘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면 허리를 수그려 귀를 가져다댔다. 제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아 귀를 기울이면 끊어질 듯 아주 희미하고 숨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 미약한 소리마저 거짓 같으면 빅터는 허공에서 수 여 분 동안 망설이다 땀에 젖기 시작한 손을 괴물의 가슴에 겨우 가져다 올렸다. 북극에서부터 빅터는 알고 있었다. 다시 뛰기 시작한 괴물의 심장은 기적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을. 그리고 빅터의 평생을 따라붙은 저주는 여전히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세차게 뛰고 있었다. 숨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심장 고동이 울리는 제 손을 멀거니 내려다보며 빅터는 소리 없이 물었다. ?

 

바로 얼마 전까지 매일 있었던 일상이었다. 괴물이 실험실에서 눈을 뜬 이후로는 한 공간에서 눈을 붙이지 않았으니 요 며칠간은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바로 어제의 일 같은 까닭은 말했든 시간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어? 그 질문 한 마디를 던지지 못해 빅터는 앉은 침대에서 내려와 괴물의 얼굴 앞에 한쪽 무릎을 접어 앉았다. 허벅다리가 욱씬 울려 빅터는 낮게 신음했다.

 

코끝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려다 문득 괴물의 뺨에 붙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떼어내어 습관적으로 냄새를 맡으니 미미한 풀내음이 났다. 살피듯 괴물의 발아래를 향해 느리게 시선을 훑어 내리니 몸통에서부터 발아래까지 흙과 풀 쪼가리가 드문드문 붙어있었다. 미간이 찌푸러들었다. 묻고 싶은 질문이 생겨 숨을 들이마셨다. ‘도망 쳤어?’ 물어보지 못하고 숨만 다시 꿀꺽 삼켰다. 그 옛날에 앙리에게 던졌던 질문임을 깨달은 까닭이다. ‘왜 돌아왔어?’ 그날의 앙리는 술에 취한 빅터를 달래기만 하였을 뿐 대답 않았었다.

 

질문을 참는 대신에 괴물이 눈을 뜨면 씻겨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꼬락서니하고는. 문득 위화감이 들어 괴물의 가슴으로 향하던 손을 거두었다. 지금 제 행색이 누굴 한심하게 여길 처지가 될 수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공에 멍청하게 떠있는 제 손을 보았다. 허옇고 긴 손가락 끝에 거스러미를 뜯어 피가 맺혔다 마른 흔적이 있었다. 손목 위로 툭 불거져나온 뼈를 보고선 제 뺨으로 손을 가져다 올렸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가슬가슬했다. 볼이 좀 패인 것 같은 것이, 살도 제법 내린 것 같았다. 하긴 그간 식사도 제대로 않았고, 낮과 밤이 없이 산 탓에 제대로 된 식사도 않았으며, 그 잠깐의 눈붙임 마저 매일 술기운을 빌려 살았으니 꼴이 말이 아닐 터였다. 한심하긴, 누가 누굴.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흘리니 다리에서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알고 있을까. 너덜해진 제 피조물에게 동정 받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으로 이를 악물어 걸었으다. 다른 한켠으로는 정말 모르는 걸까, 제 꼴을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고 싶기도 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콧대가 서있었던 인간이 한낱 절름발이 꼴이 되어, 모두가 마녀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곳에서 곁에 그 누구도 없는 신세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정도면 성공한 복수가 아니냐고. 혹은 감히 처지가 비슷해졌다고 같잖은 만족감이라도 드는가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기도 했고, 어디 제발 동정이라도 해 보라고 윽박지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충동과 호기심보다 더 그리운 것은,

 

앙리. 넌 이렇게 초라하게 변해버린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누군가의 장난질인 듯 타이밍 좋게 괴물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파르라니 속눈썹이 떨리더니 그 아래 자리한 눈동자가 빅터의 눈길과 맞닿았다. 잠결인지 아직 떠나가지 않은 술기운인지 괴물은 낮게 신음했다. 초점을 잡기 힘든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괴물이 말했다.

 

……인가.”

 

빅터는 되물었다. 어때.

 

좋아 보여?”

 

누굴 향한 목소린지 저도 알 수 없었다.

 

 

 


15.

 

온종일 보이지 않아도 어디로 간 것인지, 따위의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빅터에게 있어 자크는 신경 쓰고 싶은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쑥 사라졌다가 또 불쑥 나타난 자크는 매번 빅터의 신경을 긁었다. 예를 들어 그는 심심풀이로 사냥을 다녀온 듯,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물의 사체나 죽기 직전 경련을 일으키는 짐승을 가져왔다. 대게 새나 토끼같이 작은 산짐승들이었으나 멋대로 잡아와놓고 처리하라는 듯 제 앞에 툭 가져다 던지는 꼴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빅터가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딴 재료는 말한 적 없어. 자크는 대답했다. 누가 짐승새끼 살려내랬니? 내 새끼 만들랬지. 괴물새끼 장난감 좀 챙겨왔더니, 어우~. 까탈은. 괴물은 가지고 놀아본 적 없는 장난감이었으나 그렇다 아니다 대답할 본인은 자리에 없었다. 자크는 이를 드러내고 킬킬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 아직도 괴물새끼가 날 데려왔는지 모르겠지?”

 

그뿐인가. 자크는 눈에 보이면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 신경을 긁었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대로 사람 신경을 긁었다. 괴물과 함께 마을에 나섰다가 요기를 해결하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의 일이었다.

 

그 멀대같은 녀석이 당신 앞으로 외상값을 달아 놓고 갔다, 이거요.”

 

내뱉을 한숨마저 아까워 미간을 찡그렸다. 왜 먹지도 않은 식사 값을 지불해야 하냐고 자크를 향한 짜증의 화살을 돌리고도 싶었으나 어쨌든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따지고 든다 하여 무를 기세도 아니었다. 대체 먹기는 또 얼마나 먹은 것인지. 결국 빅터와 괴물이 식사한 값의 세 배는 더 치르고 가게 밖을 나섰다. 짜증을 숨길 생각 없는 발걸음 뒤로 다시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게 주인은 성이난 듯 빅터와 괴물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재수없게, 오늘 장사 글렀네! 퉤이! 침 뱉는 소리 뒤로 가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 마녀의 자식이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빅터는 경멸이 익숙한 듯 말없이 걷다가, 이따금 괴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를 몇 번 돌아보기만 했다.

 

이번엔 옆 마을 한스 아버지가 변고를 당했다고요?”

뒷골목에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한 게 하필 또 한스라는데, 아이고 그 조막만한 것이…….”

 

근래 마을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괴한에게 습격당한 희생자가 벌써 셋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에 내려올 일도 잘 없었고, 내려온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대놓고 둘을 피해 다녔기 때문에 늘 제네바의 소식에 대하여는 문외한이었다. 그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자면 최근 마을에 두 번의 변사자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었고, 수수께끼의 괴한에 습격당한 것도 사실이었다. 첫 번째 희생자는 둔기에 머리가 터져 숨진 채로 발견되었고, 두 번째 희생자는 목이 졸려 숨진 채 반결되었다. 세 번째 희생자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그가 뒷골목에 쓰러져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모두의 입방아에서 일치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으로 귀를 기울여 보면 한스와 한스 아버지라는 자에 대한 이야기도 달랐다. 어떤 이가 말하는 한스 아버지는 무두장이였고, 어떤 이가 말하는 한스 아버지는 석조공이었으며, 어떤 이가 말하는 한스 아버지는 도박과 술에 절은 한량이었다. 어떤 사람은 한스 아버지가 아니라 한스가 죽었다고 했다. 마을에 머문 겨우 두세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앞뒤가 맞지 않는 이 실체 없는 이야기들을 다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같이 빅터더러 들으라는 듯 목에 힘을 주어 말했기 때문이다.

 

다시 마녀의 저주가 시작 된 걸까요?”

 


 

16.

 

글을 공부하겠답시고 책상에 앉은 지 며칠 째, 여전히 펜을 잡은 손은 엉성했고 종이에 쓰여진 알파벳들은 글자라기보다는 어설픈 그림에 가까웠다. 빅터가 괴물의 등 뒤에서부터 손을 뻗었다. 펜을 잡은 손을 고쳐주기 위해 덮었던 손을 떼어내자 괴물의 팔꿈치에 달려있던 무엇인가 나풀나풀 바닥으로 떨어졌다. 펜을 고쳐쥔 것을 확인한 빅터는 허리를 수그려 떨어진 그 무엇인가를 집어들었다. 다 마르고 찢어진 나뭇잎이었다. 가끔 괴물의 옷에는 무언가가 묻어왔다. 대게 흙먼지나 풀, 찢어진 나뭇잎 같은 것들이었다. 술에 취해 잠들었던 다음날 온몸에 잔뜩 묻혀왔던 것들이다.

 

근원지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자크가 장난감이랍시고 잡아오는 사냥감들 덕분이라면 덕분이었다. 죽은 짐승을 조심스레 품에 안고 자리를 떠나는 괴물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성 뒤에 자리한 프랑켄슈타인의 묘지였다. 괴물은 주변의 돌을 주워 땅을 고르고 맨손으로 구덩이를 판 다음 죽은 짐승들을 묻어주었다. 흙을 덮은 후 뜨지 않게 꼭꼭 눌러준 다음 자장가를 불러두듯 토닥토닥 두드리곤 주위의 작은 돌 아무것이나 하나 주워다 그 앞에 세웠다. 그곳에 잠든 다른 이들의 무덤처럼 묘비라도 세워주는 것인가 했다. 괴물은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채 한참을 머물렀고, 그런 괴물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빅터도 오랫동안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 잠든 이름들을 되뇌었다. 줄리아, 엘렌, 룽게,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 제법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짐승의 일이 아니더라도 괴물은 묘지로 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딱히 하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에는 하루해가 뜨고 질 때까지 있다가 오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제 발로 간 주제에 도망치듯 벗어난 적도 있었다. 어떤 날에는 볕이 좋아 노곤했는지 쓰러지듯 잠든 날도 있었고, 어떤 날에는 읽지도 못하는 묘비를 눈에 하나하나 새기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술을 마시고 나면 저도 어떻게 갔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로 그곳에서 눈을 뜬 적도 있었다. 술 때문인지 눈이 부어있을 때도 있었고, 다른 무엇 때문인지 눈이 짓물러 있었던 때도 있었다.

 

빅터는 주워든 낙엽을 다시 바닥에 버리고 괴물의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괴물이 책을 배껴 쓰는 동안 빅터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에 제가 가져온 책을 다시 폈다. 책을 읽으려 하였으나 글자에 그리 집중이 되지는 않았다. 빅터는 책을 읽는 중간중간 기계적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괴물의 손을 훔쳐보듯 쳐다보곤 했는데, 그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괴물이 마침 잉크가 떨어진 펜을 놓았다.

 

……내가.”

 

괴물이 입을 열었다. 잠겨있던 목소리에는 무언가 망설이는 기색도 숨어있었다.

 

내가 글을 배우고 나면 가장 먼저 쓰고 싶었던 게 뭔 줄 아나?”

 

굳이 대답을 필요로 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괴물은 두 손으로 마른 눈가를 꾸욱 누르더니 이내 얼굴을 쓸어내리고선 빅터를 빤히 쳐다보았다. 방어기제이기라도 하듯 빅터는 손을 깍지 꼈다.

 

까뜨린느.”

 

. 투기장에서 만났다는 그 여자의 이름인가, 했다.

 

자크 덕분에 알았어. 룽게, 줄리아, 엘렌, 슈테판. 내가 죽인 사람들이 거기에 잠들어 있더군. ……까뜨린느의 무덤만 거기 없었어.”

 

그녀가 자신을 버린 날 불을 지르고 빠져나왔다고 했다. 아마 그때 죽은 모양이었다. 뒤늦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녀가 가엽지는 않았다. 다만 괴물이 입에 올린 다른 이름들에 마음이 아릴뿐이었다.

 

……앙리 뒤프레의 무덤도 거기 있었지.”

 

예상치 못한 이름에 심장을 가격당하기라도 한 듯 가슴께가 저릿했다. 누군가 꽉 움켜쥔 심장이 터지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온몸에 열이 퍼졌다. 머리가 울렸다. 혼자 하는 넋두리인줄 알았으나 저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끊으려 입을 달싹였으나 아직 괴물이 답을 원하는 시점은 아닌지 괴물이 낚아채듯 말을 이었다.

 

그의 머리는 여기 달려있는데 말이야.”

서두가 길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내가 죽으면 어디에 묻을 건가?”

 

따지려드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빅터의 속을 긁어내리고자 날을 세운 말투도 아니었다. 정말, 그저 궁금했을 따름이다. 죽은 자들이 고이 잠들어있는 무덤가에서 읽지도 못 할 묘비를 눈에 새기면서, 다시 눈을 뜬 제게 붙여주겠다는 그 이름이 새겨진 앙리 뒤프레의 묘비 앞에 잠들면서, 차가운 땅을 파고 흙을 골라 이름도 없는 산짐승들을 제 손으로 묻어주는 동안 생긴 제 근본과 닿은 설움이었다. 팔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것이었고, 다리는 또 다른 이름 모를 누군가의 것이었다. 머리와 심장은 그래도 사정이 나았다. 머리는 앙리 뒤프레의 것이었고, 심장은 실험 일지에 적힌 아직 그가 읽을 수는 없으나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것이었다.

 

내 머리를 잘라 다시 앙리의 관 속에 묻을 건가?”

…….”

심장은? 팔과 다리, 손목, 다시 조각조각 내고나면 나는,”

그만.”

나는 어디에 남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름도 없이,

 

그만.”

머리와 심장은 사정이 낫군, 그럼 나머지는 주인 없는 몸뚱아리로 남아서 괴물이었던 것으로 묻을 건가?”

그만 하라고 했잖아!”

 

결국 터져버린 빅터가 책상 위를 가로질러 넘어와 괴물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 괴물은 숨이 조인 듯 신음을 뱉었으나 빅터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애써 한 단어 한 단어 뱉는 동안 괴물의 목소리가 조금씩 메었던 것도 들리지 않았고, 괴물의 눈가가 벌겋게 충혈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괴물이 눈을 뜬 이후 이렇게 잔뜩 흥분한 빅터는 처음이었다. 퍼석하게 마른 얼굴에 벌건 핏대가 섰다.“!!”빅터가 일갈했다. 속에서 불길이라도 치솟는 듯 괴물에게로 성난 숨이 쏟아졌다. 빅터가 잡아 올린 괴물의 멱살을 잡아 흔들자, , 숨이 막히는 듯 괴물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화를 어떻게 주체할 길이 없는지 덜덜 떨리는 턱에 이를 악물었다. 빅터가 말을 짓씹었다.

 

죽어?”

. 그 자식 데려올 때 시키는 대로 뭐든 하겠다고 했지.”

죽지 마.”

그것만 생각해.”

 












다시 또 오랜만에 뵙습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frankenste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터앙리] sincerely yours  (0) 2020.01.19
[빅크리자크] XXX 4  (2) 2019.06.06
[빅터앙리] only when I sleep  (0) 2018.12.26
[빅크리자크] XXX 3  (7) 2018.12.12
[빅크리자크] XXX 2  (0) 201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