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다무]
알아, 내 사랑은 당신에게 독이지. 그리고 당신의 숨통을 조를 거야. 애증이라, 이 얼마나 교활한 단어야, 마음에 들어. 응. 난 그렇게 형을 죽일 거야.
[이글다무]
그것은 키스가 아니었다. 이글 홀든으로서는 폭력이었고, 다이무스 홀든으로서는 모욕이었다. 이글 홀든은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고, 다이무스 홀든은 사랑 받는 방법을 몰랐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글다무]
그래 검으로 형을 어떻게 이기겠어. 못 이겨, 나는, 절대. 그래서 내가 떼를 쓰는 거지, 내가 아는 형을 이겨먹을 방법이라곤 사랑이라는 그 엿 같은 구실 밖에는 없으니까.
[이글다무]
그런 거 보고 싶다, 적한테 잡혀간 다이무스가 두 눈을 잃고 버려진 거.
의식을 차리고 보니 어딘지도 모르겠고 눈도 안보이고 민감해져 있는데 그때 들어온 누군가가 등을 토닥토닥 얼러 주는 거. 다이무스는 바짝 예민해져서 꼭 본능처럼 상대방 목을 콱 움켜쥐고 “누구냐”하는데 그 누군가는 대답 없이 다이무스의 태도를 쥐어 주는 거. 목을 움켜쥔 다이무스의 손이 조금 느슨해지자 그 손을 내린 후 펼쳐서 손바닥에 써주는 거. <너는 눈. 나는 목소리.>
필담에 흠칫한 다이무스가 여기는 어디냐고 물으면 어디라는 대답보다 <안심할 수 있는 곳> 이라고 다시 손바닥에 써줌. 다무는 보이지 않고, 그는 말을 할 수 없고. 신체 위로 이루어지는 필담은 길어지면 알 수 없으니까 직관적이고 짧은 말들만 쓰는 거. 암튼 그래서 한동안 이루어지는 동거~
다이무스는 눈만 잃은 게 아니고 부상이 심각해서 한동안은 생활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그의 도움이 필요했음. 씻는 거, 마시는 거, 먹는 거~. 필요한 대화는 손바닥의 필담이 전부, 라고 하지만 대화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들. 요즘의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해서 결국 길게 써줘도.. 역시 알파벳의 나열이 길어지면 직관성도 떨어져서 이해하기가 힘듦. 그래서 다이무스는 나중에는 포기하고 꼭 알아두어야 할 것만 물었음. “벨져와 이글은 어떻게 되었나.” <살아있어>
살아있다는 그 말에 일단 눈을 다시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빨리 적응하여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함. 그는 다이무스가 느끼기에도 매우 정성스레 그리고 애틋하게 살펴주었고 다이무스도 점점 적응해나가기 시작함.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다른 감각들이 조금씩 예민해짐 후각이라던가 청각이라던가 그리고 그런 것들로 인해 그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함. 애틋하지만 꼭 어딘가 조금씩 서툰 이것들이 며칠의 시간을 함께 보내 익숙해 진 게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함께 했던 것 같은.
그런 익숙함을 느낀 다이무스가 나름 지극정성인 이 보살핌에 대해 물었으면 좋겠다. “내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그의 손이 아주 오랜 시간 머뭇거리고, 한숨 소리가 지나고, 다이무스의 손바닥에 꾹꾹 썼으면 좋겠다. <당신을 사랑해>
감정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는 언어로 터져나와버리면 참 주체하기 어려운 것이라.. 그 후로 다이무스를 대하는 그의 행동에 스킨십이 섞여있으면 좋겠다. 손바닥 필담 후 다이무스의 손을 자기 뺨으로 가져다 댄다거나, <사랑해>라고 쓴 자리 위로 입을 맞춘다거나, 밤잠을 뒤척이는 날이면 등 뒤에서부터 감싸 안아 칭얼거리듯이 어깨에 얼굴을 부빈가거나. 나중에는 용기 내어 키스도 하겠지. 그런 그를 다이무스는 가만히 다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이제는 그가 이글이라는 것을 알아도 다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모르는 척 해야 나눌 수 있는 밀애이기 때문에.
그러던 어느 날 다이무스가 먼저 말을 꺼냈으면 좋겠다. “네 얼굴을 만져 봐도 되겠나.” 이글은 대답 대신 다이무스의 손을 제 뺨으로 가져다댔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이무스는 그의 얼굴을 구석구석 훑어보듯이 매만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다이무스의 손은 한평생 검을 만졌고 굳은살이 아주 오랜 시간 많이도 박혀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는 이글을 볼 수 있을 만큼 감각이 섬세한 손은 아니어서.. 다이무스는 매우 슬퍼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애달프게 이글의 얼굴을 더듬는데, 단 한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은데 이제 다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아득하고 슬펐으면 좋겠다.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잘 참아냈음 좋겠다, 눈물이 흐르는 순간 자신이 그가 이글이란 걸 알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봐.
그리고 이글은 사실 목소리를 잃은 게 아니었음 하지만 목소리를 잃은 척 한 거였음 좋겠다. 다이무스는 이제 앞이 보이지 않으니 자신을 볼 수 없지만 목소리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릴까봐 그렇게 해서는 나눌 수 없는 밀애였기 때문에.
[이글다무]
그런 거 보고 싶다. 어릴 적부터 키를 재는 나무가 있는 거. 해가 지날 때 마다 이글은 나무에 등을 대고 섰고, 더 크고 싶어서 몰래 까치발도 했고, 다이무스는 그런 이글을 모르는 척 칼로 나무를 그어 키를 재주고.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고, 지금을 지나서, 전쟁이 터지고, 키를 재던 그 나무에서 적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이글도 다이무스도 서로가 휘두른 칼에 상처가 낭자하고 지칠 대로 지치고, 둘의 싸움이 길어진 이유는 둘 중 어느 하나가 모질게 맘을 먹어야 하는데 혈육의 정에, 감히 드러낼 수 없었고 아는 척 할 수 없는 애정에 망설임이 있기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결국 이글의 패배로, 키를 재던 그 나무에 이글이 기대듯 쓰러지고 다이무스는 태도로 이글을 겨누었으면 좋겠다.
이젠 더는 피할 수 없는 마지막에 다이무스가 지친 숨을 씨근덕거리며 어찌 하지도 못하고 겨누고만 있는데, 아주 피떡이 된 이글이 키들키들 웃으면서 다이무스의 검을 손으로 잡았으면 좋겠다.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웃고, 결국 나른하게 두 눈을 감으면서 다이무스의 칼날을 제 목에 가져다 댔으면 좋겠다. 이제 됐으니, 끝내라는 것처럼.
다이무스의 자의가 아닌 타의로 검 끝이 이글의 목을 툭 건드렸을 때 이글이 그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우리 막내가 벌써 이만큼이나 컸네.”
“……”
“괜찮아. 나는 이제 더 자랄 일도 없으니까.”
[이글다무]
수많은 내 불면의 밤 동안 나는 수없이도 떠올렸다. 당신의 손길에 천천히 두 눈을 감고, 의식를 내리고, 가장 연약해질 수 있었던 그 시간을, 그 시간으로 나를 가라앉히던 당신의 손이 내게 전해주던 손길의 안온함을,
이제 와서는 나를 난잡한 상상에 빠뜨리게 만드는 빛이 바랜 그 먼 옛날을, 그리고 그것을 지척에 두지 못하여 목이 타 나는 또 매일 불면에 시달렸다.
[이글다무]
안타리우스에게 붙잡힌 이글 앞에서 무수히 많은 다이무스가 죽고, 죽고, 죽고, 또 죽는 게 보고싶다. 잔인하게. 물론 다이무스가 아니고 다이무스의 클론들이겠지만... 처음엔 이글도 다이무스와 똑같은 모습을 한 클론이 처참하게 죽으니까 그게 다이무스가 아니라 다이무스의 클론이라는 걸 알아도 분리가 안 되어서 괴롭고, 힘들고 하다가 나중에는 덤덤해졌으면 좋겠다. 눈 하나 깜빡 안할 정도로.
그러던 어느 날에 어떤 다이무스 클론이 이글 앞에서 악을 썼으면 좋겠다. 정신 차리라고, 너는 살아 돌아가야 한다고. 막 그러는데, 이글은 또 무감하고 덤덤하게 보았으면 좋겠다. 형의 클론들이 이렇게 밑도 끝도 없다는 건, 진짜 다이무스 홀든은 살아있다는 거겠지. 그거면 됐다, 지겹다, 이 지겨운 지옥 같은 순간들은 언제 끝이날까.
그렇게 또 하나의 다이무스의 클론이 이글의 눈 바로 앞에서 보는데, 이글은 눈 하나 깜빡 하지 않고 이제 클론들에 대한 연민도 들지 않는데, 그게 사실은 다이무스의 클론이 아니라 진짜 다이무스였으면 좋겠다.
[이글다무]
전쟁 중에 크게 부상당해서 둘 다 숨만 겨우 붙은 거 보고 싶다. 다무님은 벌써 죽어있어도 좋을 것 같고, 아님 아직 눈을 뜨고는 있지만 의식이 거의 없는 채여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다이무스에게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글이 숨을 쥐어 짜내면서 말하는 거 보고 싶다.
형, 우리 이제 연애를 하자. 인사처럼 입을 맞추고, 카페에 마주앉아 별 것 아닌 시간도 보내고, 손잡고 영화도 보고, 가끔은 간지럽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너무 평범해서 보잘 것 없는 연애 하자. 형이 나의 어깨에 기대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연애를 하자.
난 이글다무는 그런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정말 너무 평범해서 보잘 것 없는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절대 그 둘이 가질 수 없을 관계라 그런 것 같다
[이글다무]
가끔 그런 게 보고 싶어 지는 주간이 있다. 둘이 아무런 연애 감정 없이 섹스만 하는 사이인거. 일상은 엄청 평범했으면 좋겠다. 서로 막 찐득한 기류도 없고, 다른 사람들 눈으로 봐서도 친밀한 형제네 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그냥 진짜 별 거 없는. 하지만 내킬 때 섹스하는 그런 사이. 그런데 섹스도 막 엄청 격렬하고 격정적이고 그런 건 아니고 딱 서로 욕구 해소 할 만큼의, 서로 만족할 만큼이긴 하지만 막 사랑스럽고 탐나고 하는 건 아닌거.
끝나고 나면 다이무스는 다이무스대로 일어나서 여상하게 셔츠 여미고, 이글은 이글대로 더 미련 없이 담배 물고 있을 그런. 그러다 둘 중 하나가 만나는 사람 생기면 그 마저도 하지 않는, 그러다 헤어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하게 다시 몸 섞는 그런 거.
내안의 이글다무 어떤 식으로든 존나 사랑하고 있지만 때로는 이런 식으로 전혀 사랑하고 있지 않은, 타인 대 타인의 그런 것도 보고 싶은 것..
[이글다무]
내안의 이글다무 뭐랄까..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은 이정도이지 않을까 할 때가 있다.
그래, 아마 사랑하고 있다. 절대로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믿으려고 하는 사람과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 서로 다른 연약한 믿음에서 오는 감정의 괴리와 관계의 불안함.
[이글다무]
뜬금없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다이무스가 보고 싶다.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닌데도. 그리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어도, 해야 할 것들 때문에 삶에서 미루었던 다른 것들은 몰라도 이글에게만큼은 솔직해지는 다이무스.
유별나지는 않더라도. 뜬금없이 꽃을 사들고 연합 앞에서 기다린다거나, 시와도 같은ㅋㅋㅋ편지를 쓴다거나, 스스럼없이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한다거나. 이글은 그런 큰 형이 넘나 당황스러웠으면 좋겠다. 평소에 이글이 그렇게 애정을 갈구할 때는 모르는 척 하더니 이제 와서 왜? 그래서 그런 다이무스가 좋긴 한데 쉽게 받아들일 수 없어서 오히려 피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중에 다이무스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허, 하고 기가 차고 다이무스가 먼저 입을 맞추어도 밀쳐냈으면 좋겠다.
“나는 금기로 형을 사랑하고, 형은 연민으로 내게 적선하네.”
다이무스의 진심은 그런 식으로 거부당하고 이글은 떠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서로의 영영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다이무스가 아무리 이글을 찾아가도 소박맞고 구구절절하게 편지를 써 보내도 읽지 않은 편지가 우편함에 쌓여있었으면 좋겠다.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 숨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먼저 알았더라면, 내가 그리고 네가 아닌,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미 죽은 다이무스의 편지를 이글의 묘비 앞에 두는 것은 벨져였다는 그런 이야기.
[이글다무]
그런 거 보고 싶다 루시드 드림을 하게 된 이글.
어느 날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는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큰형에게 사랑한다 말해도 밀어내지 않았고 숨을 훔쳐도 나무라지 않았고 품에 안으면 더 애틋하게 안아줬어.
그런데 아침이 오고 눈을 뜨고 나면 모든 건 존재하지 않았던 신기루~ 그래도 너무 현실 같았던 꿈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꽃도 사고 옷도 말쑥하게 입고 큰 형아 집근처를 서성대며 기다려도 보고, 결국 눈앞에 마주했을 때 “사랑해”라는 말을 숨처럼 삼키고 떠나버린 이유는 현실은 꿈같지 않음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 꿈따위 꾸지 말았어야했는데, 하고 싱숭생숭한 맘으로 잠드는데 그날도 꿈은 이글의 마음대로였으면 좋겠다. 일어날 수 없는 평화로운 행복으로만 가득 찬 꿈, 이글이 다이무스를 사랑하고 다이무스가 이글을 사랑하는 게 당연한 그런 꿈. 암튼 매일같이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데 현실은 꿈같지가 않아서 이글은 매일매일 하루 중 잠들 수 있는 밤을 제일 애타게 기다렸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종래에는 꿈과 현실의 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하다, 점차 꿈과 현실을 혼동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던 현실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든 거. 환상이 주는 지나친 달콤함을 맛보아버렸고, 믿음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걸 진실이라 믿고 싶은 그런 맘. 그렇게 이글의 세계가 부서졌으면 좋겠다
나중에 다이무스 앞에 앞에서 칼도 버리고, 맨 손으로 창문을 깬 다음 그 유리조각 하나 손에 쥐어 제 목에 가져다 대고선 다이무스한테 말했으면 좋겠다.
“그래. 그럼 난 이제 꿈을 꾸러 갈게.”
[이글다무]
<컬러버스>
태어날 때 부터 운명의 상대가 정해짐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이 흑백으로 보임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혹은 터치하면) 색이 보인다는 꽤 간단한 세계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운명의 상대를 못 보면 실명.
이거 보고 문득 생각난 건데, 다이무스와 이글은 아주 어릴 때부터 색을 알고 살았을 것 같다. 다이무스는 네살이 되던 해에 세계의 색을 찾았고, 이글의 세계는 태어나 눈을 뜬 순간부터 색채로 펼쳐져 있지 않았을까.
최초의 기억이 있기 전부터, 그래서 색이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삶. 그래서, 이글도 다이무스도 색을 구별할 줄 알기에 진작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너무 어릴 때라 그 운명의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지내지 않을까.
아주 어릴 적부터(태어나서부터) 색을 구별할 줄 아는 애들을 보고 주위에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서로는 또 서로가 운명의 상대라는 건 상상도 못했겠지, 자신의 세계에 색을 덧입힌 사람이 혈육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싶은?
그러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다이무스는 최초의 기억부터 색이 있었겠으니, 태어날 때부터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암튼 그때부터 색이 있었는데 눈으로 다 보고 있으면서도 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 빨간색이 앞에 있는데도 빨간색은 어떤 색일까. 이글의 눈동자가 파랗게 예쁜데 그것이 파란색이라는 것도 모르고 이글이의 눈동자는 어떤 색일까 무슨 색이라고 부를까 그저 예쁠 뿐이겠지, 눈앞에 운명의상대가 있고 태어날 때부터 색을 가진 삶을 살았으면서도 운명의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것처럼? 성인이 되어 실명되지 않음에 놀랄 것 같다, 실명이 되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미 운명의 상대를 만났고 보고 있던 세계의 모든 게 색이었는데. 그러면, 대체 나의 운명의 상대는.
[이글다무]
“사랑한다.”
그 말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나는 이 순간만 기다렸다. 남은 생에 홀로 길 잃은 미련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그걸 알아서. 그래서 그 말을 하고 싶어서, 형은, 다이무스 홀든은, 내가 죽을 날을 기다렸다.
이 순간을 무수히도 오랜 날 동안 바라 마지않았건만, 빌어먹을, 이런 건 너무 슬프다. 듣지 못했으면 차라리 나았을까 이제 곧 숨을 거두어 버릴 나는 미련으로 구천을 떠돌지어다.
[이글다무]
그런 거 보고 다, 비오는 날 다이무스도 이글도 비를 쫄딱 맞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글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었으면 좋겠다, 돌돌 말린 장대우산 손잡이를 잡고 다이무스 왼쪽 가슴에 겨누듯 툭 가져다 댔으면 좋겠다. 그리고 “빵-.”하고 입만 벙긋, 총 쏘듯이 우산 끝을 살짝 들었으면 좋겠다.
[이글다무]
다이무스가 은근 후각이 예민한 남자였으면 좋겠다, 혼자 길을 걷다 혼자인 이글을 만났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지척을 지나가는데, 평소와는 다른 향수냄새에 심기가 불편해지는 다이무스.
이글이 잔뜩 취해 고주망태로 돌아와 한심하다는 듯이 현관에서부터 부축해서 방으로 들이는데 술 냄새 사이에 미미한 피 냄새에, 어디도 다쳐 오지 않는 꼬락서니에 예감이 좋지 않은 다이무스.
더 이상 이글이 찾아오지 않는 이글의 정리하다, 멀끔한 이부자리를 괜히 한 번 더 정리하다 먼지와 함께 피어오르는 냄새에 그제야 눈물이 후둑 떨어지는 다이무스.
[이글다무]
언제 이렇게 늙었대, 우리 형. 그래, 형도 나이 먹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 나는 그러기는 싫어서 이렇게 한참일 때 죽겠지만, 당신은 아주 오래 천천히 나이 먹고 늙어 죽어야지. 응 당신은 늙어 죽어야지…….
[이글다무]
우리가 오래 행복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요절할 팔자, 지금 잠깐 좋아도 되잖아. 잠깐만 좋자는 얘기야. 잠시 동안만 며칠만 몇 달만 딱 죽을 때 까지만.
[이글다무]
내 안의 홀든 뭔가 이런 느낌. 이글과 벨져는 서로 친밀하도 정서적으로 가깝지만, 이글과 벨져 모두 다이무스와는 친밀감과 정서적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이글은 다이무스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다무는 이글을 오해하게 되는 것이고, 벨져는 그 사이에서 그 둘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고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난 뒤 홀로 남은 혈육이자 제 3자였던 벨져는 과연 그 둘을 어떻게 회상할까. 그리고 어떤 기분일까 싶은 그런 것.
[이글다무]
어릴 적 나무등치에 칼자국으로 매년 키 재어주던 이글다무 보고 싶다. 등 기댄 이글 머리 위로 칼로 키 재주는 다이무스랑, 빨리 크고 싶은데 나이차이 때문인 거는 모르고 자기만 빨리 안 크는 것 같아서 속상한 이글.
“나는 언제 형아만큼 커?”
“편식 안하고, 수련 열심히 하고, 말 잘 들으면 나보다 더 클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어? 빨리 크고 싶은데”
“이유라도 있느냐”
“빨리 형보다 더 커져서 결혼하자고 말해야하는데….”
다이무스는 그 대상이 크리스티네인 줄로 오해하고 귀여워서 머리 쓰다듬어주면서 그럼 수련을 더 열심히 해야겠군, 이라고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간이 아주 아주 많이 지난 지금, 이글이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서있는 다이무스 뒤에 가서 손으로 제 키랑 다이무스 키랑 어름 잡아봤으면 좋겠다. 흐음, 하고 가늠하는데 다무님이 또 무슨 꿍꿍인가 수상해서 다이무스가“뭐하는 짓이냐”하면 이글은 다이무스의 말은 귀에 안 들어오고 그냥 다이무스의 머리꼭지나 멀거니 바라보면서 중얼거렸으면 좋겠다.
“그냥 할까……(중의적의미)”
[이글다무]
그런 거 보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이글이 작전 수행으로 가더니 안 돌아오는 거. 한달 두달 세달이 넘도록 다시 나타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아무렇지도 않고 멀쩡하게 돌아옴. 아 뭔가 위화감은 있음 이글은 실종기간동안을 기억하지 못했고, 어딘가 짚이는 게 있지만 당장 이렇다 할 무언가는 없어서 굉장히 마음 불편하고 그렇게 기묘한 평화를 누리며 지내는데. 또 이글이 갑자기 홀연히 사라져서 일이주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음. 하지만 또 이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짜잔하고 나타난 것이다 첫번째 실종, 그리고 두 번째의 행방불명시간 역시 기억하지 못한 채. 암튼 다이무스는 위화감을 세게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글이 그간 스킨십 하던 것들도 마지못한 척 곧 잘 받아주곤 했었는데 전부 다 거부했으면 좋겠다. 왠지 모를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어서. 그리고 이글이 또 사라지고, 이게 두어번 더 반복이 되고. 두번째 이글이 나타난 때부터 홀로 나름 사라진 이글의 시간을 추적하고 있었던 다이무스는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날카롭고 예민해져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야근 꽉 하고 자정 넘어 퇴근하는데 저어기서 집 근처로 마중 나온듯 한 이글이가 "뭐야 형 이제와~?"하고 다무님을 반기는데, 대뜸 총성 한발이 울렸으면 좋겠다. 다무님의 눈 앞에서 머리가 터진 이글이 풀썩 하고 쓰러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뒤로 화상을 입었는지 얼굴의 반절이 녹아내려 일그러져있고(그걸 어떻게 가리고는 있었겠지만) 오른 팔은 달려있지만 못쓰게 됐는지 뻣뻣하게 굳어있고, 그 길었던 머리도 탔는지 어깨까지 겅중 짧아져있고, 왼손에 총을 들고 있었던 이글이 놓치듯 총을 놓았으면 좋겠다. 저 먼 발치에서 걸어오는 이글은 다리를 끌듯 절뚝절뚝 걸어서, 쓰러진 이글을 밟고 다이무스에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차마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었어.”
“그래서, 그래서 이것들을 보냈는데,”
“하하, 웃기지 내가 보냈는데 붙어먹는 꼴을 보니 화가 나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 그러니 도저히 살려 둘 수 있나.”
[클론이글다무]
클론이글이 다이무스에게
“애석하게도 당신에 대한 기억은 없어. 그럼에도 당신이 탐나는 건,”
그러면서 칼로 제 손가락 슥 베어서 약간의 피를 낸 다음
“이만큼의 피가 각인시킨 본능인거지.”
하는 거 보고 싶다
[클론이글다무]
클론 이글은 진짜 이글과 다이무스와는 같은 관계는 절대 가질 수 없을 거다, 그리고 클론 이글도 잘 알겠지. 그러면 이글이 가진 그와의 관계를 거세하고,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관계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서..
클론 이글의 습격으로 다이무스가 치명상을 입었으면 좋겠다. 상처도 깊고 출혈도 너무 심해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안색은 질려가고 체온은 떨어지고 숨도 옅어지고. 그런 다이무스를 클론 이글이 업어들고 헬레나에게 헐레벌떡 달려갔으면 좋겠다. 피가 약간이었기에, 많지 않았기에 자신이 완벽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클론 이글이 거의 송장이나 다름없는 피가 낭자한 다이무스를 헬레나에게 내밀며 “이정도면 충분하지?” “완벽한 클론을 만들어줘”라고, 4개월의 천진함과 기대가 가득 찬 눈을 했으면 좋겠다. 클론 이글은 진짜 다이무스는 죽게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관계를 진짜 이글이 가질 수 없게. 다만 완벽한 클론 다이무스와의 관계는 자신만이 가져야지
[이글다무클론이글]
클론이글이 숨을 다 하기 전에, 이글이랑 싸우는 거 보고 싶다. 클론이글은 이글에게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 하지 않을 테지만, 이글은 본능적으로 눈치를 챌 거 같다. 검을 맞대고 씨근덕거리는 가짜 이글의의 숨결 위로 비웃어주었으면 좋겠다.
“너 얼마 안 남았지? 가짜.”
가짜라는 말에 또 눈이 뒤집어진 클론이글이 이글의 검을 쳐내고, 다 쥐어짜내듯 검을 휘두르며 이글에게 악질렀으면 좋겠다.
“그래, 빌어먹을! 그래서 여기 있겠다고 했어. 잠깐 그 잠깐이라도 가지겠다는데 네놈 새끼가 여간 성가셔야!”
광기 어리게 웃으면서 말하는데 사실 클론이글은 극한에 몰려있었으면 좋겠다. 결국 싸움 끝에 클론이글의 빈틈을 발견한 이글이 클론이글의 팔을 썰어버리고, 휘청하는 클론이글의 발로 치서 넘어뜨렸으면 좋겠다. 쓰러진 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바르작거리는 클론이글의 머리 옆으로 이글이 클론이글의 검을 콱 내리꽂았으면 좋겠다. 이글이 클론이글을 내려다보면서 말했으면 좋겠다. “당연하지. 누가 준대?” 그리고 클론이글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유유히 자리를 떴으면 좋겠다.
아무리 몸이 불완전하여 질 것을 알고도 덤빈 것이라 하지만, 차라리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지 불쌍해서 봐준다는 듯 살려두고 갔다는 것이 여간 비참하도 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클론 이글운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대로 누운 채 바르작하는 것이 전부였고, 결국 그대로 눈도 감지 못하고 버려지듯 숨을 다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안타리우스에서 클론이글을 회수하러 오겠지.
그리고 훗날에 늘 자신의 사랑의 벽에 부딪히기만 하던 진짜 이글도. 넌 절대 가질 수 없다며 클론이글을 비웃고 사라진 진짜이글의 최후도 클론이글의 최후와 닮아있었으면 좋겠다. 간절한 것을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자의 끝은 으레 그러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헬레나가 최후는 트와일라잇에서 보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회수해갔다는 공지가 뜨기 전 푼 썰.)
[이글다무]
꿈으로 가득 찬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헉 흥겹게 불렀더니 이글다무 그런 거 보고 싶다.. 다이무스 왼쪽 가슴에 펜촉으로 살 찢어 자기 이름 새기는 이글. 지울 일이 없지요 이글의 사랑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이글에게는, 절대로.
[이글다무]
둘이 피 칠갑인 상태로 이글이 동공 바짝 조여서 숨을 색색, 다이무스 위에 올라 탄 채 흡사 당장 목을 자르기라도 할 기세로 두 손으로 제 칼 내리누르고 있고, 다이무스는 다이무스의 태도로 그 검을 부들부들 받아내는 그런 거 보고 싶다.
“형은 알고 있지? 어릴 적 작고 귀여웠던 그리운 우리 막내는 이제 없고,”
“……”
“철딱서니 없는 끔찍한 망나니로 자란 이글 홀든이 어떤 식으로 형에게 위험해 질 수 있는지”
“이글,”
“그래, 형은 아주 잘 알고 있지!”
“어떡하지…… 내 사랑이 그래…….”
“…….”
“난 그런 거 밖에 몰라.”
[이글다무]
다이무스가 결국 이글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 한다 제 마음을 토해버려도, 그걸 믿지 못하게 되어버린 이글도 좋다. 아니, 진심인 것을 알아도 이제는 차라리 아니라고 믿고 싶은 이글도도 보고 싶다.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해. 평생을 그 집착에 살았는데, 그 집착으로 어떻게든 살았는데 이제 와서 어떡하라고? 난 다른 방법 같은 거 몰라.”
“하하, 씨발. 가여운 내 사랑 영영 길을 잃었네.”
[이글다무]
“작은 형이 우리가 우습지도 않대. 어떻게 그렇게 미련할 수 있는지 싶어서, 뒷말도 안 나오는 모양이더라고.”
“그랬나.”
“그래서 형이랑 내가 어떻게 뒤지는지 보라고 했어. 적어도 그건 재밌을 거라고.”
[이글다무]
형이 날 사랑한다고 했을 때와, 아니라고 했을 때 일어날 뒷일을 생각해봐. 그리고 형이 생각하는 합리적인 쪽을 선택하면 돼 . 형이 생각하는 대로 날 믿고, 감당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하면 된다고. 쉽잖아?
[이글다무]
형은 내게 무엇이든, 어떤 사소한 것이든 말하고 나면 여상한 표정을 한 주제에 이를 꾹 악물었다. 오랜 집요함이 포착한 작게 불거지는 턱 근육을 보고 나는 멋대로 확신하고는 한다. 어금니 새로 내게 하지 못한 말을 너절하게 짓이기고 있구나.
나는 그것이 못내 기쁘면서도 기분이 더러워, 형의 턱주가리를 잡아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쑤셔 넣어 어금니 위에 눌러 붙은 질척해진 언어를 긁어내는 상상을 하곤 한다.
[이글다무]
자주 쓰는 거긴 한데.. 난 이글이 키스하면서 일부러 이로 다이무스 입술 씹어서 피 내는 거 좋아한다. 강제적인 키스 끝나고, 다이무스가 숨 쌕쌕 몰아쉬면서 손등으로 입술 닦는데 피가 좀 번졌으면 좋겠다. 이글이 그거 보고 두 뺨을 다시 손으로 잡구 피가 번진 부분을 제 입술로 닦아내어 주었으면 좋겠다. 형은,
“이렇게 상처를 줘야 죄책감이 덜 하겠지.”
[이글다무]
형, 우린 어느 생에 어느 세계에서 만나든 사랑하고 말거야, 그래, 우리가 싫다면 나라고 하자, 나는 그럴 거야. 다음 생에서는 안 조를게, 떼 안 쓸게, 매달리는 것도 마지막으로 할게.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사랑하자. 응?
[이글다무]
이글이 다이무스의 목을 콱 졸라서, 이글의 손톱이 피부에 콱 박혀서 피 보는 거 보고 싶다. 다이무스 얼굴 벌겋게 부어올라 핏줄 붉어지고 숨쉬기 힘들어 컥컥거리고 눈물도 맺히는데 놓아달란 말도 절대 않고 이글의 손을 떼어내려 잡지도 않고 벽을 치고 손을 구겼으면 좋겠다. 손가락이 벽을 너무 세게 눌러서 다이무스의 딱딱한 손톱도 꺾였으면 좋겠다. 이글이 그런 다이무스를 보고 “그래. 이 정도는 당연히 각오 하셨겠지.” 라고 했으면 좋겠다.
[이글다무]
전장에서 쓰러져 다 죽어가는 이글을 안고서 고백하는 다이무스 보고 싶다
“사랑한다.”
이글이 달달 떨리는 팔로 다이무스 겨우 껴안고서는, 다이무스에게 고개를 묻고 끝을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로 말했으면 좋겠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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